대법, 신탁재산 범위만 책임
코리아신탁, 2심 판결 뒤집어
업계 "집단소송 부담 덜었다"
부동산 분양계약이 깨졌더라도 분양관리업무를 맡은 부동산신탁사가 분양대금을 반드시 돌려줄 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신탁사의 책임은 위탁받은 사업으로 한정한다’는 약정이 맺어져 있다면, 분양금이 몽땅 사업에 투입됐더라도 신탁사가 자체 곳간까지 털어 분양대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봤다. 최근 “분양금을 돌려달라”는 수분양자들의 집단소송에 시달려온 신탁사들로선 다소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3일 경기 고양시 생활숙박시설 수분양자들이 코리아신탁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코리아신탁이 분양계약 해제로 수분양자들에게 분양 계약금 2억5000만원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코리아신탁은 건설사 A사와 고양 일산에 생활형숙박시설을 신축해 분양하는 사업을 위한 관리형 토지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그 후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고들에게 숙박시설을 분양하는 계약을 맺고 총 2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수령했다. 계약서에는 ‘건축물분양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그런데 하지만 사업 과정에서 마감자재 변경 등 일부 설계가 사전 고지 없이 이뤄지자 2021년 초 수분양자인 원고들이 “마감자재 변경 등 일부 설계가 변경된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며 고양시에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민원을 접수하고 형사고발까지 했다. 이 일로 인해 A사는 2022년 말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원고들은 이 같은 처분을 근거 삼아 분양계약 해제와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전에 돌입했다. 코리아신탁 측은 “뒤늦게 통보한 설계변경 내용은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며 “계약 해제는 부당하다”고 맞섰다. 계약금 반환 요구에 관해선 “‘신탁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분양대금 반환 의무 책임이 있다’는 특약을 맺었기 때문에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계약금이 해당 사업비로 쓰였기 때문에 이 사업과 무관한 고유재산까지 털어줄 수는 없다는 얘기다.
1심은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설계변경이나 입주 지연 등을 계약 해제 사유로 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들의 설계변경 사항 중 일부는 사전에 통보됐고, 사전 통보가 없었던 마감자재 변경 역시 인테리어 등 부수적 사안으로서 계약 목적 달성에 필수불가결한 주된 채무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건축물분양법은 설계변경 신청일 10일 전까지 해당 내용을 통보해 수분양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A사가 이 같은 법을 위반했으므로 분양 계약은 적법하게 해제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코리아신탁이 분양계약의 당사자로 분양 수입금을 포함한 모든 자금의 수납과 자금 집행을 담당하기 때문에 계약 해제됐을 때 분양대금 반환 의무를 전부 짊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설계변경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은 분양계약 해제 사유이긴 하지만 신탁사가 분양대금을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분양대금 반환책임을 신탁재산 범위로 한정하는 특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효성이 인정된다”며 “분양대금 반환 등 모든 의무가 위탁자인 A사에 승계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판결이 뒤집히면서 부동산신탁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부동산신탁사들은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기존 사업비뿐 아니라 회사 고유계정의 자금까지 끌어와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